[이강재의 임상8체질]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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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속임수
  • 승인 2024.04.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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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생존의 방편

잘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한 생명체에서 포유류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계는 다양한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동식물은 본능에 따라 생존과 번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수시로 속인다. 자연계는 살아남기 위해 속고 속이는 전장이며 곳곳이 위장된 함정이니, 속임수는 생존의 방편(方便)인 셈이다. 사람들의 사회 또한 다르지 않은데 인간에게는 본능에 더하여 의지(意志)가 있다.

동무 이제마 공의 수세보원에서 확충론은 사상인(四象人)이 가진 애노희락(哀怒喜樂)의 성()과 정()에 대해 정의한 논편이다.1) 성이란 여유 있고 객관적인 감성이고, 정이란 즉각적으로 직접 표출하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태양인의 애성(哀性)이란 듣는(耳聽) 것인데 사람들이 서로 속이는 것(衆人之相欺)이 잘 감지되니 애처롭다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인이 폐대(肺大)한 특성과 연관된(察於天時) 듣는 능력이다.

동무 공은, 애노희락이 사람들이 속이고 업신여기고 돕고 보살피는2) 관계로부터 발생3)하는 것이라고 함축하여 정의했다. 즉 태소음양인(太少陰陽人)에게 각각 애노희락의 성은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업신여기고 돕고 보살피는 것에 대한 감응이며, 노애락희(怒哀樂喜)의 정은 다른 사람이 나를 직접 업신여기거나 속이거나 보살피거나 돕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동무 공이 사용한 기모조보(欺侮助保)라는 용어는 인간의 관계 맺기에 대한 총칭이라고 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서로 속이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태도 중 하나인 것이다.

 

거짓말

소통의 도구로서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은 아닌데, 의도적인 거짓말은 인간만의 능력일 것이다. 거짓말과 관련한 이런 속담이 있다. “거짓말을 오지랖에 싸고 다닌다.”, 거짓말 하는 데는 참기름 쳤다.”,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한다.” 모두 거짓말에 능통하다는 뜻이다. 거짓말은 참말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이것은 거짓말로 꾸미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거짓말이 서툰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니 거짓말을 참말처럼 () 잘 하고 능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거짓말은 재능임이 분명하다.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현실처럼 정교한 내용으로 꾸며서 일관성을 가지도록 표현하는 일은, 일반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이 가능하고 널리 인정되는 진실에 머무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일이다. 거짓말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유지하는 것은, 모순점을 즉시 인식해서 스스로 피하고 비상사태가 생기면 신속하고도 그럴싸하게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대처도 필요한 힘든 일이다. 게다가 보통 거짓이라는 지표로 쓰이는 행동이나 반응4)이 나타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5)

 

믿음

삶이란 길()이다. 생명을 받아 태어나서 마감하는 날까지 그 길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인생은 꼬는 새끼줄 같다.”고 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반복된다. 앞에 놓인 내 삶은 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그러니 무엇인가 누구인가를 믿어야만 한다. 믿을 만한 대상이 없다면 믿을 것이 없는 자기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수준과 처지에 따라 갖게 된 신조(信條)6)에 따라서 산다. 삶은 믿음의 길인 것이다.

믿음이란, 한자(漢字)로는 신()인데 사람()과 말()의 회의자이다. 설문해자에는 信 誠也라고 했다. 정성 성()인데, 이 글자의 구성은 ()이 이루어진다()’가 된다. 한자를 만든 사람들은 믿음에 사람과 말을 연결했던 것이다. 한자 신()은 처음에는 소식(消息)이란 의미였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멀리 있는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알리는 건 처음에는 말 자체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불러서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말하면, 그가 그 말이 전해질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전한다. 처음 그 말을 뱉은 것도 사람의 말이고, 전한 사람이 전달한 것도 사람의 말이다. 그러다가 신()은 정보의 뜻이 되고 또 믿음이 되었다.

나중에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글자를 기록하는 도구와 물건이 생기면서 서간(書簡)의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것 또한 여전히 사람의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란, 사람이 뱉은 말을 통해 전해진 그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말이니, 거짓말이란 결국 거짓 믿음, 잘못된 믿음을 심으려는 의도를 가진 말이다.

 

hooking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대상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리어 대상에 대하여 잘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7) 나는 이 속담이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허물없는 친구가, 가까운 친척이, 오래 사귄 이웃이 함께 가자고 권한다. 아주 좋은 물건이 있다고 소개한다. 수익률 높은 투자처가 있다고 꼬인다. 건강과 관련한 제품을 판매하는 다단계 회사의 소비자는 대부분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친구, 친척, 이웃에게 설득당한 사람들이다.8)

다단계방식을 가진 조직에 빠지는 사람들은 1. picking-up(미끼) 2. hooking(낚아채기) 3. encapsulating(격리) 4. loving(사랑) 5. committing(헌신)다섯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단계적 구성은 종교, 홍보관(체험관), 사기꾼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친구나 친척 그리고 이웃은 내게 말을 했다. 그 말은 그들의 믿음이었다. 생존 욕구는 본능이므로 생존에 대한 본능은 선과 악의 판단을 초월한다. 선과 악이란 가치는 상대적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속일 수도 있고 명분에 어긋나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아첨꾼에게 돈을 주는 건 바보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첨꾼의 자리에 다양한 사람을 넣어볼 수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분석가, 하나님 옆자리에 앉혀준다는 신흥종교창시자, 만병통치를 주장하는 건강제품 선전가, 정의사회 구현을 약속하는 정치선동가, 노벨상 받을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학교재단 관계자. 그런데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결국은 당신에게서 솟아난 욕망이 이 사람들의 뛰어난 화술과 작업에 얽혀 결국 낚아채질 것이다.

 

재능

내 안에 있는 재능은 자꾸 나를 부추긴다. 거짓말도 재능이다. 거짓말이 재능이라면 거짓말도 동일하다. 대사업가와 사기꾼의 출발은 같다. 언제나 남의 돈을 빌린다. 또 저술가와 전문사기꾼도 비슷하다. 동일한 모델에 따라 먼저 전체적인 틀(이야기 구조)을 고안하고, 한 단계씩 세부적인 것을 그려나간다. 성공하는 사업가에게는 혁신이 있고, 대작가에게는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이 있다면, 사기꾼에게는 허황하고 허무맹랑한 꿈이 있을 뿐이다.

사기꾼은 화술과 작업을 통해서 먼저 상대방의 믿음을 얻는다. 그리고 욕망을 자극한다. 그렇게 잡아챈 후에는 불안을 조성해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9) 역사 속의 위대한 사기꾼은 일종의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허황하면 할수록 오히려 신비해져서 더 잘 통하게 되었다. 대중의 무지(無知)가 바로 이런 거짓에 대한 섣부른 믿음을 초래했고 그로부터 오늘 이 시대를 지배하는 모든 오류들이 생겨났다.10)

 

체질별 유형

토양체질(Pan.)은 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을 떠벌이는 것으로 속인다. 그런데 귀가 얇고 조급한 대중이 많은 사회라 그들의 거짓이 더 수월하게 먹힌다. 수양체질(Ren.)은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것으로 결국은 상대를 속인다.

금양체질(Pul.)은 거창하고 거대하고 허무맹랑한 것을 주장하는데 그것을 대중이 믿도록 만든다. 그래서 속인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유일신을 믿는 민족적인 배경 아래에서 이것이 제대로 통했다. 목양체질(Hep.)은 조금인 것을 거대하게 부풀려서 속인다. 우연히 생성된 줄기세포 달랑 한 개를 11개로 부풀려 논문을 냈던 황우석의 경우가 있다.

금음체질(Col.)은 독선적인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세운 개념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것을 상대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므로 결과적으로 속인다. 선전선동으로 상황을 속이는 셈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Nazis)에서 괴벨스가 있었다. 목음체질(Cho.)은 보통은 근면하고 꾸준하며 성실하기 때문에 남을 속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그가 가진 근면과 성실이 그의 거짓말을 들통나지 않게 만들어 줄 수는 있다. 나는 사도 바울의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이 그의 뻥이라고 생각한다. 목음체질이 속이려는 대상에게는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이나 복수심이 있다. 또 당장에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을 잘 한다. 곤란에 처하는 상황을 그저 지금에서 뒤로 미루는 것이다.

수음체질(Ves.)은 남이 말하거나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것을 그대로 믿고 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3자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 토음체질(Gas.)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성향을 갖고 있으므로 남을 속이는 것에는 8체질 중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다. 다만 경솔하게 약속한 후에 그 일을 잘 잊어먹으므로 결과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꼴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거나 헌신하고픈 것은 그의 진심인데 문제는 그런 약속을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음체질이 그가 가진 잘못된 믿음을 강하게 전파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많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조문 3-1에서 사상인의 애노희락을 성과 정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확충론(擴充論)」은 성정론(性情論)이다. 

2) 기모조보(欺侮助保)

3) 기모조보에 대한 반응

4) 예컨대, 눈을 자주 깜박인다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웃음, 남을 직시하지 못하는 눈길, 건너뛰는 행위, 흥분하는 경향, 눈에 띄는 목소리 변화 같은 것들

5)  류동수 역, 『이웃집 사기꾼』 애플북스 2013. 1. 29. p.62

6)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

7)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8) Stephen Barrett, 「Quackery: How Should It Be Defined?」

9) 김영헌, 『속임수의 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18. 10. 25.

10) 스피노자의 정신, 『세 명의 사기꾼』 여름언덕 201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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