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고령자를 위한 의료, 노년의학의 수요가 커지는 상황이다. <노인을 위한 의학은 있다>는 아직은 낯선 노년의학에 대한 개념과 그에 필요한 역량을 담은 책이다.
“고령자를 케어하기 위해 특화된” 노년의학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1942년 학회(미국노년의학회)가 설립되었고 7천 명 이상의 전문의가 있는 진료과목이다. 노년의학의 대상은 단순히 65세 이상의 환자라기보다는 1) 기능장애 혹은 Frailty(허약, 노쇠)에 해당하는 고령자, 2) 환자의 가족이 간병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상황, 3) 고령 환자와 그 가족이 여러 전문과에 내원하며 복잡한 치료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환자가 해당된다(미국 노년의학회 기준).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고령 환자 수에 비해 노년의학 전문가 수 자체가 매우 적으며 공식적인 전문의(Geriatrician)제도 또한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쓰인 이 책에서도 노년의학과 의사만으로 고령 환자를 모두 커버할 수는 없기에 고령 환자를 접하는 모든 의료진이 고령 환자 진료의 역량을 갖출 것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소개하는 고령 환자의 진료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 중 5Ms와 DEEP IN은 모든 사례에 두루 활용된다. 5Ms는 사고 정지를 예방하고 고령 환자의 전체를 부감俯瞰하기 위한 도구이다. 5Ms란 인지/정신Mind/Mental, 가동성Mobility, 투약Mediciation,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Multi-complexity, 가장 중요한 것Matters most이다. 5Ms를 활용한 사고의 사례를 보자면 혈압이 높아진 90세 환자를 보는 경우 단순히 혈압약을 조절하는 것 뿐 아니라 1) 인지 : 환자가 인지증-치매-의 영향으로 복약을 제대로 못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둠, 2) 가동성 : 환자의 낙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처방, 3) 투약 : 환자가 추가로 진통제를 임의 복약했을 가능성의 검토, 4)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 : 환자의 다른 질환에 의해 고혈압이 생겼을 가능성의 검토, 환자의 생활비나 의료비 등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의 검토, 5) 가장 중요한 것 : 혈압을 ‘정상 수치’로 조절하는 것이 환자의 자립생활 기간 연장에 도움이 될지를 살피는 식이다.
DEEP-IN는 “눈 앞의 고령자와 그 주변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 진료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초진 시에 인지장애Dementia, 우울Depression, 섬망Delirium, 시력Eye+청력Ear, 신체기능Physical function(낙상Fall), 실금Incontinence, 영양Nutrition를 평가하여 기능 저하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도구들과 활용 사례, 고령자에게 흔한 낙상이나 경관영양 등과 관련된 연구 결과,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법 등 다양한 면에서 고령자 진료의 역량을 높여준다.
고령화 사회는 한의학의 기회일까? 한의학은 침, 뜸, 추나 같은 비 약물적인 강력한 치료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의 특성인 정체관념整體觀念도 노년의학에서 필요로 하는 횡단적 관점과 어우러진다. 많은 한의사가 좀 더 주의와 시간을 기울인다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노년의사가 될 자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료인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우선 환자의 인식이 있다. 의사가 약을 주지 않고 빼거나 몇 가지 불편함에 대해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두자고 한다면 환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노력 끝에 환자의 신뢰를 얻고 나면 이제 환자를 둘러싼 세계-환자의 가족, 요양보호사, 환자와 관련된 기존 치료를 해 온 다른 의료인 등-와 부딪히게 될 것이다. 노년의학은 질환뿐 아니라 환자의 삶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만큼 다직종(간호사나 사회복지사, 약사 등) 간 연계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함께 있을 때에 온전할 수 있겠다.
변화로 가는 길을 막는 또다른 요인, 가장 클 수도 있는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 제도에서 환자의 약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경제적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노력과 시간의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선의로 노력하는 많은 의료인이 있지만 의료의 변화를 개개인의 선의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현시점에서 노년의학적 진료를 온전히 하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워낙 큰 수요가 존재하기에 사회의 변화는 많이 멀지는 않을 것이고, 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때 필요할 노년의학에 대한 인식과 진료에 필요한 관점, 유용한 도구들을 소개하는 귀한 도움을 준다.
김린애 /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