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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를 통해 본 한방의료의 변천과 정체성(5)

기사승인 [642호] 2006.06.30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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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방 후 현재까지의 한방의료 관련 법규

한방의료는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종래의 체제와 제도가 붕괴되면서부터 일본을 비롯한 서양의 제국주의적 정책의 일환으로 전통적인 것은 낡고 버려야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식민지 지배를 받는 동안 일제는 한의학 말살정책을 펼쳐 자신의 서양의료체제를 우리나라에 이식하였다. 이에 따라 한의사는 전문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의 길을 걸었고 양의사들은 나름대로 안정적 지위와 권력을 확보하면서 의료전문직으로 성장하였다.

해방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다시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서양의학의 직접적인 유입과 국내 정책에서의 우대를 통해 계속 시련기를 거쳐야 했다.
서양의료는 의료를 독점하기 위하여 한방의료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막는 등의 압력을 계속 행사하였다. 그러나 한방의료는 자체 결속을 통해 이러한 시도에 대항하였다.

50년대와 60년대는 국회에서 한의사제도가 만들어지고 교육기관이 설립되는 등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허물어졌던 제도를 되살리기 위한 ‘제도적 맹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70, 80년대 교육기관 설립의 증가, 보건사회부 내 한방 전담과인 의정3과의 설치, 한방의료보험의 실시, 韓醫師로의 명칭 개정 등의 ‘제도적 정착기’를 거친다.

90년대 들어서서는 1993년 약국내 한약장 설치 제한 조항의 폐지로 촉발된 한약분쟁을 거치면서 한방의료는 도약의 기회를 맞는 ‘제도적 확장기’를 가지게 되었다.
국립의료원에 한방진료부가 설치되어 국가기관에서 한방의료를 실시하게 되었고 한국한의학연구소 설립, 보건복지부 내 한의약담당관실 설치, 보건(지)소에 공중보건한의사 배치, 한방군의관의 증가 등 한방의료가 점차 제도적 소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전문한의제도와 한약사제도(한방의약분업)의 실시로 제도적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① 해방후부터 한국전쟁까지 - 제도적 맹아기(1)

1945년 해방이 되어 법령 제1호로 정부 조직을 만들면서 위생국을 설치하였고 다시 보건후생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6년 조직을 크게 확대하여 보건후생부에 13국을 두어 보건행정과 의료구호 및 후생문제 등 민생과 관계있는 모든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법령 제1호로 보사 행정 업무를 사회부로 이양하면서 1실5국22과를 설치하였다.
당시 보건국은 보건과, 의무과, 약무과, 방역과, 한방과, 간호사업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방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하였으나 1949년 7월 25일 정부조직 1차 개편 때 삭제되었다.

한편 1945년 양방의료와 치과의료는 4년제 의학전문학교를 폐지하고 예과 과정을 두는 6년제 대학으로 개편하였으나 한방은 여전히 일제시대의 동양의학강습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1946년 10월 4일 조선의사회가 동양의학강습소를 인수한 후에 동양의학전문학원으로 허가받아 강의를 시작하였고 1948년 3월 24일 4년제 동양대학관(동양의학과, 인문학과)으로 개편하였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3월 5일 동양대학관이 폐관되고 다시 서울한의과대학으로 설립 인가하여 1953년 4월 1일 개교하게 되었다.

이 시기 주목할만한 법적 변화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와중에 한의사제도를 공포한 것이다.
1950년 보사부의 보건의료행정 법안에 한의사가 제외되자 이를 반대하는 진정서를 국회에 제출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1951년 9월 25일 국민의료법인 법률 221호로 한의사제도를 공포하게 되었다.
‘제2조에 한의사, 제3조와 제8조에 한의원, 제13조에 한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나온 자로서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자격을 획득하게 함’으로써 권리와 의무를 의사와 동일하게 하였다.
이때 의료를 양의와 한의의 이원제로 하는 국민의료법이 함께 통과되었다. 이를 토대로 1952년 1월 30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 검정시험규정이 갖추어짐으로써 한방의료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②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 제도적 맹아기(2)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방의료는 또 한번 시련을 겪게 된다. 그것은 1961년 10월 국가재건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의료법을 개정하면서 한의사제도를 다시 삭제한 것이다.
당연히 한의계는 강력히 반발하여 각계에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이 결과 1962년 3월 20일 신의료법을 다시 공포할 때 한의사제도 폐지를 무산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신의료법도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제14조 2항에 ‘국공립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최종 2년간 한방의학과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한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한의사 면허를 부여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이 규정은 국공립대학에서 한의과대학을 설치하려 하지 않고 유일한 동양의약대학은 대학설치 기준령 미달이라는 이유로 폐교조치를 당한 상태에서 결국 한의학 교육기관을 폐지시킴으로써 한의사의 배출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다시 한의계는 반발하였고 결국 다음해인 1963년 11월 25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12월 13일 공포된 개정의료법에서 종전의 최종 2년과 국공립대학교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대신 ‘의과대학 한의학과에서 한방의학을 전공한 자로서 한의학사의 학위를 받고 한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자’로 개정하였다.
이는 사학재단에서도 한의학교육을 할 수 있으나 명칭은 의과대학이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로써 한방의료는 의료계의 집요한 제도화 반대를 무릅쓰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1963년 개정의료법에 의하여 1964년 1월 21일 다시 동양의약대학을 동양의과대학으로 개칭하고 한의학 수업연한도 의과대학과 같이 6년제로 승격되어 현재의 교육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이 시설기준 미비와 재정난 등으로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되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과로, 약학과는 약학대학 약학과로 변경되었으나 제도적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음회에는 ③ 1970년 초부터 1980년 말까지 - 제도적 정착기가 연재됨>

박용신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장·서울 종로구 동서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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