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성폭력피해자 진료하려면 ‘피해자다움’ 강요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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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가 성폭력피해자 진료하려면 ‘피해자다움’ 강요해선 안돼”
  • 승인 2019.12.0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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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이사람: 성폭력피해자 의료지원하는 이유명호 한의사(이유명호 한의원)

한의학으로 전신치료 도움…국가 지원 있다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호주제 폐지를 외치며 여성운동에 앞장서온 이유명호 한의사. 그는 동시에 성폭력피해자들에게 한의학으로 인술을 펼쳐온 의료인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성폭력피해자를 대하는 한의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성의 인권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고은광순 한의사와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에사 활동해왔다. 호주제 폐지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전범과 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발족할 때 함께했으며, 한국이주여성들을 돕기도 했다.

나는 72학번인데, 당시 내 주위에 많은 학생들과 달리 나는 데모에 관심도 없고 공부만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한의대를 다니면서 고은광순 한의사를 만나게 됐다. 그는 원래 이대 이화여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긴급조치위반으로 퇴학당한 뒤 다시 한의대에 입학한 케이스인데, 그를 만나며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에는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없이 사회학에 포함되어있었다. 이후 오한숙희의 책을 보면서 여성학을 독학했다.

 

▶성폭력피해자 의료지원기관을 운영하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한국여성민우회 등의 여성단체에서 성폭력피해자를 법적으로 도와주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건강이 우려가 될 때 내게 도와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그러면 내가 피해자들을 치료하곤 했다. 원래는 이런 경우 국가에서 성폭력피해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문제는 이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재판 등을 통해 피해자라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렇게 국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대상자들이 아니라 법적절차 등이 아직 진행 중인 환자들을 지원해왔다. 최근 여한의사회에서 주최했던 ‘성폭력 피해자 한의의료지원 시스템 구축’ 심포지엄은 한의사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진료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한의치료는 성폭력피해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성폭력피해자들은 기본적으로 약을 많이 먹는다. 불면증, 공황, 호흡곤란, 폭식 및 거식 등의 전신증상을 많이 겪는다. 몇 년이 지나도 숨을 제대로 못 쉰다. 쑤시고 아픈 것은 기본이고, 성기질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신체적, 정신적 이유로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질병을 각 분과마다 병원을 방문해 치료한다면 약을 수없이 먹어야한다. 주로 정신과약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한의사는 전신치료를 해줄 수 있다. 소화불량, 자율신경실조 등을 모두 개선해줄 수 있다. 나를 방문하는 환자들도 대부분 수많은 질병을 안고 찾아오고 나를 어머니처럼 의지하기도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을 남긴 환자도 있다. 문제는 비용과 절차다. 그래서 국가에서 이를 지원해준다면 한의사들은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의사의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어려운 환자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 한의의료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한의사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한의사들이 여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몸집도 작고 지방이 많아 힘이 약하다. 그렇다면 여성은 열등하고 피해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왜 여성은 지방이 많은 몸을 타고났을까.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나올 때는 바깥 환경이 빙하기인지 가뭄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엄마의 몸에 지방을 쌓아두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힘이 약하고 폭력의 대상이 된다. 다를 뿐이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한의사들은 환자를 대할 때 이러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면 안 된다. 환자가 왔을 때 성폭력피해자라는 색안경을 쓰고 환자를 대한다면 좋은 치료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환자에게 2차가해만 줄 수 있다. 환자를 존중하고 공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의사가 충분히 교육을 받은 후에 진료에 나섰으면 한다.

자신은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한의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인이 아니라 전문인이다. 면허증만 가지고 있다고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인문, 사회 등의 소양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한다. 특히 최근에는 미투운동이 진행 중인데 이는 여성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이다. 의료인들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남성한의사 뿐 아니라 남성의 눈에서 바라보는 여성한의사 또한 존재할 수 있다. 자칫 피해자를 비난하는 실수로 2차가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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