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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 權度杬이라는 宗敎

기사승인 [1205호] 2019.09.28  06: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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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 독후감

2007년 가을에 남양주에 있던 한의원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저편에서 “나 안덕균이요” 하는 것이다. 경희대 한의대에서 본초학을 강의했던 안덕균 교수였다. 전화가 왔던 당시에는 경희대학교에서 퇴임한 상태였다. 사실 나는 한의대를 다녔던 6년 동안 안덕균 교수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강의시간에 질문을 했던 적도 없다. 그러니 그 분의 전화에 놀랐다. 무슨 일이신가.

허경구 전 의원1)과 제선한의원에 가서 권도원 선생과 점심을 함께 했다고 하였다.2) 그런데 그 자리에서 권도원 선생이 어떤 출력물을 보여주면서 그 글을 쓴 사람을 칭찬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고 알고 있던 한의사 중에서 8체질론에 대한 이해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궁금해져서 그 인쇄물을 복사해서 허경구 전 의원과 나눠가졌고, 허경구 전 의원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목소리도 들을 겸 소개 삼아 미리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내가 권도원 선생께 보냈던 것은 독후감이다. 2007년 7월에 주석원의 『8체질의학의 원리』가 통나무에서 나왔다. 책을 보면서 메모를 했는데, 그것이 [주석원이 지은 「8체질의학의 원리」에 관하여]3)라는 제목으로 A4 54장짜리 독후감이 되었다. 주석원의 책은 첫 장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주석원 원장, 통나무출판사, 권도원 선생께 각각 보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점 두 가지는 진화론과 9체질에 관한 언급이다. 8체질론과 8체질의학의 기반은 기독교적 창조론이다. 창조론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8체질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진화론으로 8체질론을 설명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주석원은 그리고 여덟 체질에 더하여 아홉 번째 체질의 존재 가능성을 말했다. 그러면서 책의 제목을 ‘8체질의학의 원리’라고 걸었다. 아홉 번째 체질을 말하면서 8체질의학의 원리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그 당시의 나는 권도원의 8체질론을 아주 교조적으로 신봉했다. 나의 글은 매우 전투적이었다.4) 그래서 권도원 선생이 더 흡족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2] 『학습 8체질의학』

2009년 11월 20일에 나의 첫 책인 『학습 8체질의학』이 행림서원에서 나왔다. 이 책은 2009년 초에 기획하여, 4월 7일에 행림서원 이갑섭 사장을 만나 출판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원고는 별 탈 없이 5월 중순에 완성하였는데, 내가 권도원 선생의 서문을 받기 위해서 제선한의원의 부원장이던 김창근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뜻밖으로 출간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달간 우여곡절을 거쳤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출간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9월 중에 원고를 권도원 선생께 보냈다. 10월 초에 내가 근무하던 엘림한의원으로 권도원 선생이, “한번 만납시다” 이렇게 직접 전화를 거셨다. 그러면서 그날 당장 만나러 오라는 것이다. 화요일 오후에만 여유가 있다고 사정을 설명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2009년 10월 6일 오후 1시에 제선한의원으로 찾아 갔다. 1층에 있는 응접실에서 기다리다가 권도원 선생을 따라서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는 갈비탕을 먹었고 선생은 된장찌개를 드셨다.

나는 먼저, 원고의 전반부에 선생의 텍스트를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 선생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문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선생이 ‘창근이도 책을 내겠다고 하고 있고, 김용옥 교수도 지난번에 제자가 무슨 책을 낸다며 서문을 부탁했다’는 것이다.5) 그런데 나의 원고 내용이 권도원 선생에게 너무 호의적이라, 사람들에게 마치 사전에 서로 협의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서문을 쓰기가 어색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문을 써 줄 수 없다는 완곡한 거절이었다. 나는 텍스트 사용에 대한 승인을 얻은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뜬금없이 ‘최경규에게 배후세력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피터 윤(Peter Yoon)6)을 아느냐고 묻더니 그가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최경규가 2009년 1월에 펴낸 책7)에 후원자 명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는 최경규와 피터 윤이 미국에서 AIDS 환자를 치료한 내용이 담겨 있다.8)

내 책이 나온 후에 제선한의원과 미국에 있는 권우준 씨에게 책을 보냈다. 2009년 12월 2일에 권도원 선생이 ‘책을 잘 만들었다’고 엘림한의원으로 직접 전화를 주셨다. 권우준 씨도 이메일을 통해서 “오랜 준비와 정성이 충분히 보이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3] 檮杌 金容沃

나는 1991년부터 거의 10년간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에 빠져 있었다. 군(軍)에서 전역이 임박했던 시기에, 병사들의 내무반에 돌아다니던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고 난 후부터다. 김용옥은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醫山問答』에 “내가 만난 신(神)은 단 두 사람이 있다. 그 하나가 모차르트요, 또 하나가 동호 권도원이다.”라고 썼다. 김용옥은 동호 권도원을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推仰)했던 것이다. 그래서 덩달아 권도원이라는 이름이 내 안에서 신과 동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책이 나온 1994년에 김용옥은 원광대학교 한의본과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9) 그리고 주말에는 상경하여 동숭동에 있던 도올서원에서 동의수세보원을 강의했다.10) 그 강좌를 진행하면서 권도원 선생을 초청11)하기도 했다.

2013년 11월 10일에 김상훈 선배를 만났을 때 중요한 증언을 들었다. 자기 동기들이 제선한의원에 다닐 때, 도올 김용옥이 권도원 선생의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올이 인터뷰하러 제선한의원에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도올에게 권도원 선생에 대한 자료가 상당히 많이 있을 거라며 도올 선생을 만나보라는 조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권도원 선생 평전(評傳)을 써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도올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4] 권도원이라는 宗敎

2008년 초에 제선한의원을 다녀온 환자들을 통해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권도원 선생이 노망(老妄)이 들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권도원 선생의 열혈 신봉자였으므로 혹시라도 선생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수소문을 했더니 이런 내용이었다. 환자 중에서 친한 분들에게만, ‘세상에 변고가 생기니 미리 준비를 하라’고 당부를 한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하는 말씀은 ‘그 때가 되면 지구상의 시계(時計)가 모두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마야력과 관련한 것이었다.

권도원 선생이 예측한, 변고가 생긴다는 날짜는 2012년 12월 23일이었다. 선생의 논문 「화리(火理)」나 그것을 강의한 자료12)를 통해서 짐작해 본다면, 시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균형에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만약 지구의 공전궤도가 태양 쪽으로 조금 당겨진다면 공전은 빨라지고 자전은 늦어지게 될 것이다. 1년은 365일보다 짧아지고 하루는 24시간보다 길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현재 사용하는 시계는 분명히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늘 걱정이 좀 과한 편이라 혹시 8체질론의 이론과 체질침의 운용체계에도 변화가 생기거나, 아니면 8체질의학이 아예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2008년 2월 23일에 권도원 선생께 편지를 드렸다. 선생은 3월 9일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하루나 1년의 길이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8체질론의 체계에는 변화가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마야력은 2012년 12월 22일까지만 계산되어 있고 그 이후의 시간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종말론과 연결시켜서 생각했다.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구상에 큰 변고가 생길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며 지나왔듯이 2012년 12월 22일은 다른 때와 다름없이 지나갔고, 23일 이후에도 지구의 시계는 정확하게 작동했다. 지나고 보니 해프닝이었다.

나는 『학습 8체질의학』을 낸 이후에, 권도원이라는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권도원이라는 종교’로부터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작 2012년 12월 22일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빠져나온 후에야 그곳이 늪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의학(醫學)이 종교(宗敎)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도원 선생은 신(神)도 예언자도 아니다. 그래도 권도원 선생은 여전히 위대하다.

 

※ 참고 문헌

1) 김용옥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醫山問答』 통나무 1994. 1.

2) 주석원 『8체질의학의 원리』 통나무 2007. 7.

3) 최경규 『8체질』 엘림 2009. 1.

4) 김창근 『권도원 박사의 8체질의학』 디자인랩 2010. 11.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11대, 12대 국회의원이다.
2) 안덕균 교수는 경희한의대 17기 졸업이니 권도원 선생이 경희대에 적(籍)을 두고 있을 당시에 한의대를 다녔다.
3) 2007년 7월 24일 완성
4) 나중에 2011년 초에, 주석원 원장과 친한 삼송도추한의원의 박재정 원장을 통해서 내 글을 받았던 주석원 원장의 소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외딴 곳에서 야구방망이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5) 2007년 7월에 주석원의 『8체질의학의 원리』가 통나무에서 나왔다.
   김창근은 2010년 11월에 『권도원 박사의 8체질의학』을 엮어 펴냈다.
6) 한글 이름은 윤석진이다.
7) 최경규 『8체질』 엘림 2009. 1.
8) 체질침으로 AIDS 환자가 치료되었다면 칭찬해야 할 일인데, 권도원 선생은 피터 윤이 환자들을 치료했던 절차를 문제 삼았다. 
9) ‘도올 김용옥은 원광대 한의대 89학번 입학생들이 한의예과 2학년이 되었던 1990년에 예과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 그런데 예과 2학년 1년 동안 동급생들과 마찰을 빚었다. 그래서 도중에 그 학년을 그만 두었다. 그런 후에 다시 90학번이 예과 2학년이 되던 1991년에 다시 예과 2학년에 복학했다. 이후에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거의 전 강의를 맨 앞자리에서 들었다.’고 동급생인 조정문 원장이 말했다.

10) 檮杌 東醫壽世保元 講論 : 1993. 9. 18. ~ 1994. 8. 20.
11) 1994년 2월 19일
12) 1999년 10월 21일, 신라호텔 일식당
 

이강재 mjmedi@mjmedi.com

<저작권자 © 민족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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