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한의학 연구 경험이 색다른 임상가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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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한의학 연구 경험이 색다른 임상가 만들 수 있어”
  • 승인 2019.07.1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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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한의계의 여성 활동가② 박히준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침의 기전 궁금해 연구직 선택…AMSRC서 파킨슨약 부작용 연구 등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본지는 한의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한의사들을 소개하며 선배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한의계의 여성 활동가’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에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AMSRC)에서 경혈의 효능과 침 치료 기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히준 교수를 만나 한의학 연구와 임상의 연계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경혈의 효능과 침 치료 기전에 대한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한의대 예과 1학년 시절 의료봉사를 갔었다. 당시 선배가 어깨가 잘 돌아가지 않는 환자에게 침을 놓자 환자가 바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해서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을 뒤로한 채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문뜩 왜 침을 놓으니까 어깨가 자유자재로 움직였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기전을 연구한다면 내가 임상의로 활동할 때도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을 진학했다.

연구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해외여행에서였다. 본과 3학년에서 4학년이 되던 겨울방학 때 여행을 떠났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이집트 등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나의 숙소가 있던 구 예루살렘은 이슬람교, 유대교, 아르메니아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함께하는 성지였다. 그곳에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인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연구를 택했다.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수행했나.

이 센터는 2005년 이혜정 교수가 설립했다. 1999년경부터 분자생물학, 신경학, 임상한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다학제팀이고 오랫동안 팀워크를 다져왔다. 나는 연구의 근거는 균형이 맞아야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임상에서는 연구자료가 있다면 치료효과에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초연구를 통해 아직은 임상에서 잘 활용되지 않은 분야에 근거를 제공하면, 임상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 수 있다. 기초와 임상은 협력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가 진행하는 파킨슨병 연구를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보겠다. 센터에서 파킨슨병 연구를 진행하던 초창기에는 임상에서 파킨슨병 환자에 대한 침치료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동물실험을 진행해보니 침이 파킨슨병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신경과학에서는 다리에 침을 놨는데 머리에 있는 신경세포가 보호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뒤로 여러 차례 비슷한 연구를 했지만 늘 침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연구를 진행하다보니 임상연구도 필요해져서 임상 교수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희대한방병원에도 파킨슨클리닉이 설치되어 있고 파킨슨치료를 하는 한의사들도 많아졌다. 나는 이것이 연구가 임상에 영향을 끼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또한 레보도파를 먹는 파킨슨환자를 대상으로 침치료를 실시했을 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이 전인 2014년에는 침을 통해 레보도파를 반만 섭취해도 2배 이상의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연계해 침이 레보도파로 유발된 부작용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실행했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레보도파를 섭취한 지 5년 이상이 되면 50% 가량이 부작용을 겪는다. 그런데 연구 결과 특정한 경혈에 침을 놓으니 레보도파의 부작용도 줄여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기초연구를 진행하면 그 다음에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통해 한의원에서 레보도파 부작용을 겪는 환자를 침으로 관리할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처음 파킨슨 관련 논문을 발표하던 당시에는 이러한 연구를 인정받지 못했다. 어느 학술지에서는 임상에서 침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근거가 없다며 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평도 있었다. 그래서 기초연구와 임상의 협력이 중요하다. 기초와 임상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들의 협력이 선순환을 이룬다.

 

▶한의대생들의 한의대 대학원 진학률은 저조한 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대학원 진학률은 높지 않았다. 학생들이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는 이유는 임상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임상에서의 경험이 없다면 연구를 할 때도 아이디어에 한계가 오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나도 임상의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반대로 임상에서 진료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연구직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구직이나 임상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분야이든 일정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 다른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힘들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노력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만약 호기심이 많거나 왜 이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탐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는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있다. 실제로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을 연구자의 소양이라고 생각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주저 말고 경험해보라. 기초한의학 연구 경험으로 색다른 임상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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