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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 Dr. Lage U. Kim

기사승인 [1182호] 2019.03.30  06: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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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교활동을 위한 도미(渡美)

  신기회(新紀會)의 창립1)멤버이면서 리더그룹인 십인회(十人會)의 일원이기도 했던 서용원 원장2)에게서 2014년 무렵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권도원 선생이 진짜 아끼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권도원 선생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제자를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은 권도원 선생에게 인정을 받았던 유일한 사람이다. 목사였고 권도원 선생에게서 체질침을 배운 후에 선교활동을 위해 미국에 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하였다.     

  2015년 여름에 조재의(趙載宜) 씨3)를 처음 만났다. 그에게서 이 분에 대해 좀 더 듣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사업을 하다 실패를 했고 부인과도 헤어졌다. 혼자서 생활하다가 큰 병을 얻게 되었는데 그 병 때문에 권도원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신학교를 다녔고 목사가 되었다. 권도원 선생에게 체질침을 배운 후에 미국으로 갔는데 한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 아이다호(Idaho)에 가서 살았고, 지역사회에서 꽤 인정을 받았다.

  조재의 씨도 선교활동을 위해 1990년에 하와이에 갔다가 LA로 갔는데, 이 분을 직접 만났던 적은 없다고 했다. 이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은 알았고 이 분의 연배(年輩)가 자신보다 20년 쯤 위4)라고 했다. 조재의 씨가 8체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의 가든그로브(Garden Grove)에 있는 경산한의과대학5)을 다니던 때다.

 

[2] John Baik

  미국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사람이 또 있다. 나는 조재의 씨를 만난 후에 그가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문서 파일을 몇 개 받았다. 조재의 씨의 설명을 통해서 이 파일들의 출처가 John Baik 6)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John Baik은 물론 미국에 있으니 John Baik이라는 사람을 그냥 피상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 파일들을 분석했다. 그런 후에 2015년 8월에 John Baik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내가 분석한 내용을’ 이메일(E-mail)로 그에게 직접 보냈다. 그는 이메일로 답장을 주었다.

  졸업을 하고, 1993년 선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선교지에서는 한약보다도 침이 실제적으로 쓰임이 있겠다싶어, 침을 제대로 좀 배워보고자 잘 하는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분이 권도원 박사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셔서, 두 개의 논문을 찾아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그 두 논문은 영어로 되어 있었고, 한글 번역본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논문을 통하여 권 박사님의 오수혈에 대한 이해를 보고, 이 분이 정말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권 박사님의 한의원을 방문하여 권 박사님께 제가 왜 왔는지를 말씀드리고, (~ 中略 ~)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고, 강의를 듣고, 권 박사님 한의원에서 여러 번 권 박사님이 치료하는 것을 참관하면서 조금 배우게 됐던 것입니다.7)

 

[3] John Baik의 파일
  John Baik이 가지고 있었거나 만든 자료들 중에서, 지금 내가 이 글을 통해 집중하고 있는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아래에 John Baik의 파일 중에서 캡처한 내용을 보자. 여기에 나오는 질병명칭은 영문으로 되어 있다. 질병명칭을 이렇게 쓰는 것은 한의사에게는 썩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파일의 내용은 John Baik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서 질병의 계통이 나열된 순서를 보면 ‘소화기의 이상’ 다음에 ‘호흡기의 이상’이 나온다. 이 순서에 주목하면서 비교해 볼 것이 있다. 

   

 

   
 

1993년 4월에 이명복 선생이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에 ‘체질의학 식사법과 침법’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 중에서 이명복 선생은 최신치료법의 일람표8)라고 하면서 체질침 처방 자료를 소개하였다. 이명복 선생이 소개한 처방 자료가 John Baik이 가지고 있던 한글 파일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명복 선생이 실은 자료는 영문으로 된 질병명칭을 한글로 바꾼 것이다. 이명복 선생은 의사였지만 임상의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자연건강학회지』가 전문적인 의학잡지는 아니므로 한글로 번역해서 실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나는 두 자료를 비교하여 선후(先後)를 가린다면 영문 명칭을 쓴 John Baik 자료 쪽이 먼저라고 생각한다.9) 그리고 John Baik의 파일 속에서는 이명복 선생이 인용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처방자료가 이어지고 있다. 

  John Baik도 이명복 선생도 이 파일 내용을 직접 만든 당사자가 아니라면, 작성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 파일의 전체내용을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영문 질병명칭을 사용했다. 2) 3단방 이상의 고단처방에도 방향성 표시10)가 있다. 3) 중간장기를 조절하는 처방을 M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M방이 처방 중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4) 제시된 질병명칭이 한의사 친화적이지는 않다.

  위에서 4)번을 언급한 이유는 John Baik이 직접 작성한 파일과 이 파일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John Baik이 작성한 한글 파일에는 ‘조열(潮熱)’이란 용어가 나온다. 조열은 한의사에게 익숙한 용어이다. John Baik이 자신이 한의사임을 증명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위 영문 질병명칭이 들어간 파일을 만든 사람이 양방의사가 아니라면, 영어를 쓰는 지역에서 영어에 익숙해진 사람일 것이다.

 

[4] 이명복 선생의 도미
  이명복 선생은 1978년에 한국자연건강회에 입회하여 활동했다. 1993년 4월에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이 나왔고, 1994년 12월에 제2집이 나왔다. 나는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국립중앙도서관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때 이 자료들을 이미 검색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홀히 넘겼던 것이 있었다. 2015년에 조재의 씨를 만난 후에 다시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이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체질의학 식사법과 침법’의 말미에 미국 아미다호에 거주하는 한의사인 Dr. Lage U. Kim에게 1991년에 개인지도를 받았다고 기록11)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개인지도였을까. 이 글의 내용은 체질침 처방과 이명복 선생의 임상사례이다. 임상사례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개인지도를 받았다면 체질침 처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신치료법이라고 소개한 처방은 대부분 3단방이고 4단방도 있다. 1991년 당시에는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책이 나온 1993년 4월이라고 해도 그렇다. 체질침 처방에서 가장 낮은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기본방이 배철환을 통해서 동의학당에서 공개된 것이 1994년 8월이니 말이다.

  이명복 선생은 1967년에 자신이 오래 앓아온 위장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권도원 선생을 처음 만났고, 이후에 오랜 치료 끝에 병을 고치게 되어 권도원 선생의 제자가 된다. 이명복 선생은 1970년 2월부터 체질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었다. 1970년대 초반에 권도원 선생을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국체질침학회가 조직되었고 이명복 선생은 여기에서 고문을 맡기도 했다. 1978년 이후에는 한국자연건강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독자적인 연구를 지속했고, 1994년에는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를 출간하여 대중에게 권도원 선생과 체질침을 알리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이렇게 권도원 선생과 오래 전부터 교류했던 그가 1991년에 도미하여 Dr. Lage U. Kim에게 개인지도를 받았다고 책에 기록하여 놓은 것이다. Dr. Kim이 아이다호에 있었다는 부분에 내 시선이 꽂혔다.

  이명복 선생은 한국자연건강회에서 활동하면서 권도원 선생과 차츰 멀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오링테스트나 완력테스트를 이용한 체질감별법을 주장하면서 결정적으로 단절되었을 것이다. 권도원 선생은 자신의 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권도원 선생과의 교류가 끊긴 후에, 이명복 선생은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가 진척될수록 스승인 권도원 선생이 이룩한 임상적인 성과가 궁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체질침 처방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권도원 선생이 관계를 끊은 사람에게 이런 고급 정보를 줄 리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추리해 본다. 이명복 선생은 주변을 수소문했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아이다호에는 Dr. Kim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찾아간 것이다. 이명복 선생은 한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를 했던 사람이고 유아독존(唯我獨尊)적인 성향을 지닌 금양체질이다. 그런 그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의 오지로 찾아간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Dr. Kim이 ‘권도원 선생이 진짜 아끼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Dr. Kim은 도미하기 전에 한국에서 권도원 선생으로부터 배우면서, 체질침 고단방이 수많은 난치병 치료 과정에서 실험되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2000년 1월 15일에 상신(相信)한의원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2) 대구시 고신한의원 원장
3) Jay Cho : 원래 이름은 재희(載熙)인데, 권도원 선생을 만난 후에 재의로 개명했다. 8체질을 하는 치과의사로 유명한 조인희 원장이 4촌 형이다. 
4) 조재의 씨가 1962년생이니 이 분은 1940년대 생이다. 권도원 선생과도 20년쯤 차이가 난다. 
5) 경산한의과대학은 1995년에 캘리포니아주 교육국과 침구위원회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았다.
6) 백OO 씨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출신이다. 학부시절에 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에서 활동했다. 한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8체질의학을 몰랐다.
7) John Baik은 1993년 11월 9일에 롱비치 UBF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8)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 p.58
9) 위 내용 중에서 snoring을 번역하면 ‘코골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그런데 이명복 선생의 자료에서는 ‘코고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10) c(con-puncture)와 p(pro-puncture)
11)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 p.63 

이강재 mjmedi@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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