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8체질][體質과 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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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體質과 鍼]에 관하여
  • 승인 2019.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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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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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태석

외과의사 송태석1)은 침술에 관심이 많았다. 충남 서천(舒川) 태생으로 1944년에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전에 전북 삼례에서 의원을 개원했다가, 전쟁을 거치면서 병원을 정리한 뒤에 해군에 들어가서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1960년 말에 해군군의학교 부교장 직(職)으로 군의관 생활을 끝내고 부산에서 삼세외과의원2)을 개원했다.

1953년에 30대 부인에게 완골(完骨)혈에 유침(留鍼)하여 마취현상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1959년에는 독일침술학회의 바흐만(Bachmann G.) 박사가 제안한 ‘금침(金鍼)과 은침(銀鍼)의 보사(補瀉)에 관한’ 논문 현상공모에 응모하여 수상하였다. 해군에 있던 시절에 소곡(小谷) 이재원(李在元)을 알게 되었고 소곡 문하에서 사암침법(舍岩鍼法)을 배웠다. 1965년 5월3)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제13차 국제침술학회에는 「Procaine 주사(注射)의 보적(補的) 역할」이란 논문을 제출하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사암도인침술연구회를 이끌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고려수지침 쪽으로 기울어 『醫道の日本』에 고려수지침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1980년대에는 고려수지침 학술연구회장으로 활동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를 지낸 송정석이 형이고, 문구회사 모나미의 송삼석 회장이 동생이다.

송태석은 권도원 선생과 동향(同鄕)이고 연배도 비슷하여 두 사람이 『醫林』을 통해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서로 교류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송태석은 독일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한 경험이 있어서 유럽 침술학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13차 국제침술학회의 주최 측이었던 오스트리아 침술학회의 비시코 박사는 송태석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송태석은 배원식 선생의 醫林社를 통해서 제13차 국제침술학회 공지를 『醫林』에 내고 참가자와 논문을 모집하였다.

 

[2] 권연수

1964년 『醫林』 44호에, 국제당한의원 권연수(權延壽)는 국제침구의학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국제학회에 초청받을 때 우리의 태도’라는 글을 실었다. 앞부분에서는 자신이 1961년에 일본침구치료학회(日本鍼灸治療學會)의 초청을 받아 학술행사에 참석4)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침구계의 현황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런 후에 글의 말미에 이런 내용을 썼다.

再昨年만 하더라도 臺灣에서 개최한 東南亞細亞鍼灸學會議5)에 참가통지가 한의사회로 온 것 같은데, 참석자 人選 문제와 기타 旅費 문제 등을 한의사회 몇몇 인사가 회동하여 결정을 지어가지고 참석자를 파견시키려고 한 과거 처사만 보더라도 한국침구의학계가 유기적인 협조와 親睦이 결여되어 있으며, 비협조적이며 英雄的인 獨步狀을 여실히 露呈시켰다고 단정할 수 있다. 대표적 역할을 목적으로 하는 外國에 참가 招請은 어디까지나 신중을 기하여 전체 의견에 協選이 정당할 줄로 안다. 參加部面에 全責任을 雙肩에 걸머지고 가서 萬國代表席上에서 국위를 高揚시켜야 하는 대표자격 人選을 몇몇 인사가 獨善的으로 선정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常識 以下의 처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6)

권연수는 거창한 수사(修辭)를 동원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과 같이 이미 ‘국제적이 된’ 7) 인물을 국제 학술회의에 보낼 결정을 하지 않은 한의사회가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니 1965년에 일본침구치료학회가 개최할 예정인 국제침구학회(國際鍼灸學會)에 참가 통지가 오면 다른 사람 말고 이미 국제적인 인물인 자신을 꼭 뽑아달라는 뜻이다. 국제적인 인물이 되고 싶은 한의계 인사가 권연수 한 사람 만은 아니었으리라. 권연수의 글이 실린 『醫林』 44호에 다음과 같은 공고가 나온다.

醫林社 社告 제1호

제13회 世界鍼灸學會 招請

1965년도 제13회 세계침구학회가 오지리, 비엔나에서 同年 5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개최하는데, 다음과 같은 초청장이 外科醫師 宋台錫 先生 앞으로 送付해 왔다. ~ 이상 3항 가운데 희망하시는 침구학자 선생들은 오는 9월 10일까지 醫林社로 명단과 논문으로 보내주시면 심사 당선된 논문은 영문번역을 하여 준비위원회에 보낼 작정이오니 많은 投稿해주시기 바랍니다. 宋台錫 謹.9)

권연수가 이 공고를 보고 의림사 앞으로 자신의 논문을 보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평소에 늘 준비하고 있던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한의사회에서는 공식적인 대표를 보내지 못하고 말았던 제12차 국제침술학회 아주지구대회에 참석하기로 예정되었던 한의계 인사는 권도원 선생과 이문재(李文宰)이다. 이들이 선정된 경위가 불만이라고 권연수가 말했던 것이다.

 

[3] [體質과 鍼]

권도원 선생은 의림사 마감일에 맞게 자신의 참석의사를 통보했을 것이다. 논문의 내용은 ‘체질침의 원리’이다. 그런데 이 당시에 권도원 선생에게는 완성된 새 논문이 없었다. 왜냐하면 1962년 10월에 대만에서 발표하고자 했던 논문 ‘체질침’10)에서 구조가 크게 변화된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회 준비위원회에 논문의 실제 내용은 보내지 못하고 제목만을 알렸다.11) 이때 논문의 일부라도 완성했었다면 아마도 권도원 선생이 1964년에 『醫林』 45호에 투고한 글은 다른 내용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도원 선생은 [體質과 鍼]이라는 글을 투고했다.

권도원 선생의 투고가 전호(前號)에 나온 권연수의 글을 의식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명분 축적용이었고 나는 생각한다. 1962년의 경우에 학회 참가를 주도했던 서울특별시 한의사회는 권도원 선생에게 회원 동료들 앞에서 사전 발표를 하도록 배려했었다. 서울특별시 한의사회는 1962년 9월 28일에 제1회 한의학연구발표회(漢醫學硏究發表會)를 개최하였고,12) 권도원 선생은 ‘체질침구학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던 것이다.

[체질과 침]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체질론은 의학사의 처음이었던 것과 같이 또한 그 종(終)도 되어야 한다.

2. 고혈압의 발생원인을 본태성고혈압과 신성고혈압으로 구분함.

3. 수세보원의 약리(藥理)를 대신할 체질적 치료법인 침리(鍼理)를 연구함.

4. 약(藥)을 통하여 최강장부와 최약장부의 과도함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침으로는 더 명확을 기할 수 있다.

5. 각 장기는 경락을 통하여 서로 영향하고 각 경락을 통하여 각 장기를 조절할 수 있는데 그 도구가 침이다.

6. 약리가 그러하듯 침리도 같은 병명에 치료법이 다른데, 예를 들어 요통이라고 하면 체질별로 그 원인은 신허(腎虛), 신실(腎實), 대장허(大腸虛), 대장실(大腸實) 등의 구분이 있고 오히려 신허보다는 방광실(膀胱實) 요통이 더 많다.

7. 먼저 체질의학(體質醫學)을 보급한 후에 체질침(體質鍼)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글은 마치 소논문과 같은 형태이다. 먼저 의학의 역사를 얘기했고[서론], 고혈압을 예로 들어 질병의 발생 원리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밝혔으며[병리], 치료법을 개발하게 된 배경과 치료원리를 설명했다[치료법]. 침 치료법에서는 요통을 예로 들어 자신의 독특한 치료이론을 설명했다[사례].

이 글은 1962년 9월의 연구발표회처럼, 오스트리아 학술대회 참석에 앞서 한방계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체계를 미리 알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1965년 5월에 비엔나에서 개최한 제13차 국제침술학회의 준비위원회에서는 참석 예정자들에게 1965년 2월 1일까지 연제(演題)를 제출하고, 3월 15일까지 원고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권도원 선생은 원고 제출 기한에 맞춰서 원고의 일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그의 첫 발표 논문(the 1st Paper)에 아래의 내용이 있다.

A part of this study done by the present writer was reported through Dr. Johannes Bischko in The 13th International Congress of Acupuncture, held in Vienna in May of 1965.13)

(번역) 필자의 본 연구의 일부는 1965년 5월 비엔나에서 개최되었던 제13차 국제침술학회에 요하네스 비시코(Johannes Bischko) 박사를 통하여 보고된 바 있다.

이것은 1962년의 논문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가진 논문이 1965년 3월 15일 이전에 완성되었다14)는 뜻이다. 이 논문에는 체질침과 8체질의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체질 감별도구인 체질맥(體質脈)의 내용과 체질맥도(體質脈圖)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宋台錫(1920~2005. 3. 12.)
2) 三世外科醫院  부산시 영도구 대교로 4가 112번지
3) 5월 8일~12일
4) 국제침구학연구에 참가하게 된 권연수씨
   “권연수씨는 지난 9월 14일,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침구회 제11회 학술회의에 한국대표로서 渡日 초대를 받아 참가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침구계에 巨星的 존재로 君臨하게 되었으며 침체하에 있는 침구연구의 熱을 북돋아주게 하는 原動力이 되었다.”
   『醫林』 30호, p.42
5) 제12차 국제침술학회 亞洲地區大會  1962년 10월 6일~8일
   中華民國鍼灸學會(會長 吳惠平) 主催  
6) 1964년 『醫林』 44호, p.25
7) 한의원 堂號도 ‘國際堂’이다.
8)  1. 학회의 소식을 계속적으로 듣고자 하는 者.
    2. 참석 및 논문발표를 희망하는 者.
    3. 논문만을 發送하고자 하는 者.
9) 『醫林』 44호, p.33
10) 「The Constitutional Acupuncture」
11) 그런데도 학회 준비위원장이며 오스트리아 침술학회의 회장인 요하네스 비시코 박사는 친히 권도원에게 書翰을 보내서 논문 발표에 동의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1965년 新年號인 『醫林』 47호, p.38
12) 서울特別市 漢醫師會 李鐘海 회장 개막사 중에서
   ~ 오늘 발표하는 先生들은 한방계 권위자는 아닙니다만은 다년간 연구 노력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오니 여러 선생께서 學究하는데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鍼灸學에 대해 발표하는 선생 가운데 今般 중국 臺灣에서 열리는 東南亞鍼灸學會(대회일자 10월 6일~8일)에 초청받은 분이 있어 그 학회에 가서 발표할 演題를 떠나기 전에 국내 여러 선생들 앞에 한번 발표하는 것도 큰 意義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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