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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別号叙의 발굴과 의의

기사승인 [1175호] 2019.02.02  06: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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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29)

Ⅰ. 서론

 필자는 평소 <方藥合編>을 연구하면서 惠庵은 왜 號를 惠庵이라고 지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惠庵의 여러 저서를 면밀히 조사하였는데, <醫宗損益>의 醫宗損益自叙 말미에 惠庵題라고 나오기는 하지만 號를 惠庵이라고 지은 연유에 대해서는 언급한 부분은 없었다. 혹시나 다른 판본의 <醫宗損益>에는 惠庵이 號를 지은 사연을 적은 부분이 누락되지 않고 남아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여러 대학교와 박물관의 소장본을 조사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고, 모든 판본에서 醫宗損益自叙의 내용은 동일하였다.

 그러던 중 <醫宗損益> 木版本에서 惠庵이 號를 지은 연유를 적은 惠庵別号叙 내용이 수록된 판본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과 일본 杏雨書屋에서 발굴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자 한다.

 

Ⅱ. 본론

1. 惠庵別号叙의 발굴

 

惠庵別号叙, 范文正云, 不乍良相, 願作良醫. 醫和曰, 上醫醫國. 國可之, 醫之醫者乎. 相貴醫賤, 文正之存心於濟物也, 深矣. 抑亦相致澤于朝, 以正萬邦, 醫和合君臣, 以療萬民, 然則有同, 可知已, 一於惠施于政而已矣. 余德涼才輶, 何敢望文正, 願爲和而不得醫人不暇醫國, 奚知. 然且柔質慈民, 有不敢辞, 余窃耴惠, 而不知爲政之義. 惠以自号.

(惠庵 別号에 대한 서문, 文正公 范仲淹이 이르길 훌륭한 재상이 되지 못하면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고, 醫和는 上醫는 나라를 치료한다고 하였으니, 나라를 치료할 수 있다면 의사 중의 의사일 것이다. 재상은 지위가 높고 의사는 지위가 낮은 것임에도 文正公은 뭇 사람을 구제하는 것에 마음을 두었으니 지극히 깊도다. 게다가 재상은 조정에서 은택을 베풀어 천하를 바르게 하였고, 의화는 군신처럼 만민을 치료하였다. 그렇다면 醫와 政이 같으니, 정사에서 은혜를 베푸는 것과 한가지일 뿐이다. 나는 덕이 부족하고 재주도 없는데 어찌 감히 文正公과 같은 훌륭한 재상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또 의화가 되기를 원하나, 사람을 고칠 수 없다면 나라를 바로잡을 겨를이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부드러운 성품으로 백성을 자애하는 것을 감히 사양할 수 없어서, 내 가만히 惠를 취하기는 하나 爲政의 뜻을 알지 못한다. 이에 惠라는 글자로써 自号를 삼는다.)(필자 번역)

   
그림 1.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의 惠庵別号叙

2. 惠庵別号叙의 印文

 惠庵別号叙의 끝에는 원형의 陽刻 落款이 있는데 吾唯知足이다(그림 2, 좌). 한편 흥선대원군 李昰應도 吾唯知足의 落款을 사용하였다(그림 2, 우)2).

   
그림 2. 惠庵別号叙(좌)와 대원군 李昰應(우)의 吾唯知足

3. 柔質慈民과 惠庵의 “惠”

 柔質慈民은 <周書>에 나오는 말이며, 明나라 郭良翰의 <諡紀彚編>3)에서는 “柔質慈民曰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文句를 인용하여 諡號를 지었다(그림 3).

   
그림 3. 柔質慈民과 惠庵의 “惠”

4. 惠庵別号叙의 판본이 적은 이유

惠庵이 <醫宗損益>에 惠庵別号叙를 넣어 간행할 때는 惠庵이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품계가 副司果(6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민족의학신문 1143호 참조). 惠庵이 自號할 때 근거로 삼은 柔質慈民은 諡號를 지을 때도 사용하였다. 諡號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비록 柔質慈民이 諡號를 지을 때만 사용하는 문구는 아니더라도 自號의 근거로 삼았음을 출간을 통해 공표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하고도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惠庵別号叙 속의 柔質慈民 때문에 惠庵別号叙가 실린 목판본은 곧 간행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정황으로 인해 오늘날 惠庵別号叙가 실린 목판본이 희귀하고 傳本이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Ⅲ. 고찰

 自號는 스스로 自己의 호를 부르거나 짓는 것을 말하는데, 王肯堂의 念西居士, 王冰의 啓玄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간혹 본인이 존경하는 사람의 號를 그대로 가져와 自號하는 경우도 있는데 檀園 김홍도는 明나라 李長蘅을 존경하고 본받고자 하여 李長蘅의 호를 自號로 삼았다. 강세황의 檀園記를 보면 “이에 스스로 檀園이라 호를 짓고 나에게 記文을 지어 주길 청하였다. 내가 알기로, 단원은 明나라 때 사람 李長蘅의 호이다. 김홍도가 본떠서 자기의 호로 삼은 것은 무슨 생각에서인가? 이장형이 문학을 하는 선비로서 고명함을 사모한 것일 게다.(乃自號檀園, 要余作記. 余惟檀園, 乃明朝李長蘅之號也. 君之襲以爲己有者, 其意何在. 不過慕其文士之高朗)”고 하였다(변영섭4)에서 재인용).

 三木榮은 <朝鮮醫籍考> 등 그의 저서에 惠庵의 초상화를 全載하였다. 그러나 惠庵別号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추측컨대 惠庵의 초상화는 의서 안에 실린 초상화라는 희귀성으로 인하여 全載하였으나, 惠庵別号叙는 醫宗損益自叙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두종은 <韓國醫學史>를 비롯한 그의 어느 저서에서도 惠庵別号叙 뿐만 아니라 惠庵 초상화에 대해 언급이 없다.

 지금까지 黃度淵에 대하여 惠庵이라는 號를 누가 지어준 것인지, 아니면 自號한 것인지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다. 한의계에서 自号叙를 남긴 인물은 惠庵이 현재까지 유일하고, 더구나 木版本에 自号叙를 수록하고 있는 경우는 惠庵의 <醫宗損益>이 처음이다. 惠庵別号叙의 발굴은 惠庵이 號를 지은 연유에 대한 의사학계 최초의 보고로서 큰 의의가 있으며, 이번 발굴을 통해 惠庵의 號는 自號한 것임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기존의 惠庵 사상 연구는 이진철5)이 수행한 것이 있는데, 그는 황도연의 의학사상에 대해 “時宜에 적합해야 함, 實用적인 의학을 추구, 인체의 元氣를 중시, ‘3통 분류법’을 통해서 虛實辨證의 체계를 확립함”이라고 요약하였다. 그러나 이는 의학과 관련된 사상에 대한 것이었으며, 惠庵의 개인적인 성품과 관련된 사상에 대한 연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惠庵의 개인적인 사상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거의 없었는데 필자는 이번에 발굴한 惠庵自号叙를 통해 惠庵의 개인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惠庵別号叙는 惠庵의 인간적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惠庵別号叙의 印文에 나타난 吾唯知足은 “나는 오로지 만족할 줄을 안다”는 것으로, 惠庵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에 대해 만족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惠庵은 의술로 施惠하는 것을 정치에서 은혜를 베푸는 것과 동일시하면서 醫者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음을 吾唯知足과 惠庵의 落款으로 惠庵別号叙를 마무리한 것이다.

 <醫宗損益> 跋文에 보이는 ‘經營未遂文正之可願’에 대해 이진철5)은 范仲淹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학문의 성취는 공자가 추구하던 것에 미치지 못하였으나”라고 잘못 해석하였는데, 이 문장은 “文正公 范仲淹이 기원한 훌륭한 의사가 되지 못하여”라고 해석해야 옳다. 즉 惠庵은 <醫宗損益>의 惠庵別号叙 뿐만 아니라 跋文의 문장을 통해서도 范仲淹의 뜻을 좇으려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惠庵別号叙와 跋文을 서로 참조하면 惠庵의 의학사상을 조금 더 실제에 가깝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柔質慈民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惠庵은 諡號를 염두에 두지 않고 柔質慈民을 인용한 것일 수도 있으나, 문제가 생기자 惠庵別号叙를 일부러 생략한 채 <醫宗損益>을 간행하여 惠庵別号叙가 실린 판본의 傳本이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향후 惠庵에 대한 추가 사료 발굴을 통한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

 

Ⅳ. 결론

1.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일본 杏雨書屋 소장본 <醫宗損益>에만 惠庵別号叙가 수록되어 있다.
2. 自号叙를 남긴 의서와 인물은 <醫宗損益>과 惠庵이 유일하다.
3. 惠庵別号叙의 吾唯知足 落款을 통해 惠庵은 安分知足한 것으로 보인다.
4. 惠庵이 自號한 근거인 柔質慈民은 諡號를 지을 때도 사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 惠庵別号叙가 실린 판본은 곧 간행이 중단되어 현재 傳本이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1. 김호, 醫史學者 三木榮의 생애와 朝鮮醫學史及疾病史, 의사학, 2005:14(2):101-122.
2.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인장, 2006:123.
3. 郭良翰, 欽定四庫全書, 明諡紀彚編 卷二.
4. 변영섭, 스승과 제자, 강세황(姜世晃)이 쓴 김홍도(金弘道) 전기 : 「檀園記」·「檀園記 又一本」, 美術史學硏究 2012:275·276:89~118.
5. 이진철, 의종손익을 통해 살펴본 황도연의 의학사상 연구, 2017,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6. 黃度淵, 醫宗損益,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同治戊辰新鐫.
7. 黃度淵, 醫宗損益, 일본 杏雨書屋 소장, 同治戊辰新鐫.
* 자문해 주신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한민섭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mjmedi@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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