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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가문 8대를 이어가고 있는 근현대 한의학의 살아 있는 역사

기사승인 [1173호] 2019.01.17  1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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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으로 만난 사람 (3) : 윤영석(춘원당한방병원 병원장)

서울 종로구 춘원당한방병원 윤영석 병원장은 1847년부터 현재까지 8대를 이어오고 있는 한의사 가문의 종손이다. 지난달에 자신의 한방병원의 이름을 딴 실습실을 방문하기 위해 모교인 경희대 한의대를 방문하였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지난 2018년 9월 1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춘원당한방병원 부설 한방박물관에서는 《춘원당 이야기-평양에서 종로까지》(부제: 8대 170년을 이어온 춘원당에서 다시 피게 될 꽃과 나무들)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진행되었다. 이 특별전은 한국전쟁 이전 평안북도 박천, 평양에서부터 현재 종로까지 이어진 춘원당한방병원의 역사를 보관 자료들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자리였다. 윤영석 원장은 이 자리가 지난 가문의 역사를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감회를 피력하였다.

먼저 ‘춘원당’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봄의 뜰처럼 만물이 소생하는 집(春園堂)”이라는 뜻이라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해서 ‘8대’가 되는지 물으니, 참 길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난감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었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춘원당한의원은 1847년 평안북도 博川에서 윤영석 원장의 7대 先代인 初代 원장 尹尙信 先生(1792∼1879)이 처음 건립하였다. 윤상신 선생은 1817년 과거에 급제하여 武官으로 활동하다가 1842년 평양에서 관직이 龍驤衛副護軍까지 이른 후 물러난 후 5년 후에 한의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儒學者로서의 소양을 살려 젊어서부터 儒醫로서 활동하면서 한의학에 깊은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1879년 별세할 때까지 32년간 고향에서 의술을 펼쳤고, 이어서 2대 윤빙열, 3대 尹基燦(1848∼1912), 4대 尹担德(1862∼1915)로 이어지는 醫家家門을 이어갔다. 1888년 3대 윤기찬선생은 『鍼灸要覽』이라는 제목의 의서를 짓는데, 이 책의 표지에는 ‘流注法’, ‘靈龜訣’이라는 제목이 부제로 붙어 있다. 1912년에 3대 윤기찬 선생이 별세하고 3년 후에 4대인 윤단덕 선생까지 콜레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어 70여년을 이어온 춘원당 집안은 家學을 이어가기 어려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때 5대 尹宗欽 先生은 겨우 5세의 어린 나이였다. 3대 윤기찬선생의 부인인 양씨는 춘원당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제일로 삼고 손자 尹宗欽 先生을 평양의 유명한 한의사였던 김춘성 선생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손자를 서당에 보내 한학을 익히게 하였다. 1928년 윤종흠이 18세가 되자 평양에 보내 김춘성에게서 한의학 수업을 받게 하였다. 여기에서 1938년까지 10년간 수련을 받아 醫生試驗을 합격하여 한의사로서의 길을 내딛게 된다. 합격과 동시에 평양에 ‘춘원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의원을 다시 시작하니 박골마을에서 춘원당이 문을 닫은 지 23년만의 일이었다.

평양의 춘원당한의원은 소화기 질환과 부인병을 전문으로 하여 크게 유명해졌다. 윤종흠 선생의 치료법은 기존의 처방에 얽매이지 않고 증상에 따라 스스로 입방하는 것이었다. 윤종흠은 연구를 통해 터득한 本草學 지식을 치료에 견고하게 접목시켜 옛 것에 매이지 않는 신처방을 만들어 활용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나면서 춘원당 가문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1951년 윤종흠 선생은 아들 尹容熙 선생과 함께 越南하게 된다. 6대인 윤용희 선생(1931∼1968)은 平壤醫專에 입학한 수재였지만 공산치하에서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힌 몸이었다. 이동 중에 탈출하여 평양 집 근처의 빈집 뒤의 토굴에 은신해 있었는데, 1·4후퇴 때 아버지 윤종흠과 함께 월남하게 된 것이다.

윤종흠 선생은 월남한 후에 부산 부평동에 춘원당한의원을 열었고, 1952년 제1회 한의사 국가고시에도 합격하여 141번의 면허 번호를 부여받았다. 서울로 환도한 후에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춘원당한의원을 열었다. 1953년에는 6대 윤용희 선생이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여 한의사 집안의 계보를 잇게 된다. 불행하게도 6대 윤용희 선생은 1968년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7대인 윤영석 원장의 나이가 12세였을 때였다.

집안에서 자랑할만한 것이 또 무엇이냐고 물으니, 바로 ‘家訓’이라고 한다. 어떤 가운일까? 할아버님 윤종흠 원장께서 손자 윤영석 원장께 어느날 다섯가지를 다짐하셨다는 것이다. 그 다섯가지는 바로, 첫째, 한의사가 될 것, 둘째, 아들에게 한의사를 시켜 가업을 잇게 할 것, 셋째, 한의원을 옮기지 말 것, 넷째, 보증을 서거나 남에게 돈을 빌리지 말 것, 다섯째,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이었다.

윤영석 원장은 사학의 명문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여 한의사 가문을 이어갔다. 1978년 윤영석 원장이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 이후로 윤종흠 선생은 학문적 스승으로 임상 교육을 시켰다. 본과 1학년 시절부터 시작된 교육은 졸업 후 6년 후 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이후로 윤영석 박사가 춘원당한의원을 맡아서 뒤를 잇게 되었다. 윤종흠 선생은 손자 윤영석 박사에게 『雷公炮製藥性賦』에 있는 藥性歌를 외우도록 지도하여 본초학을 잘 할 것을 당부하였다. 춘원당 가문의 교육철학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 춘원당한방병원에는 춘원당 만의 고유처방이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물이다.

한국전쟁으로 남쪽으로 넘어온 후 부산시 도평동에서 춘원당한의원으로 시작하여 휴전 후 1953년에 서울 소격동으로 왔다가 1958년 낙원동 현재의 자리로 와서 소아마비와 부인병(생리불순, 불임 등 각종 부인병)을 많이 진료하다가 1973년부터는 갑상선을 많이 보게 되었다. 현재 춘원당한방병원에는 7명의 한의사가 전문 분과별로 활동하고 있다. 많이 치료하는 질환은 불임증, 갑상선, 알러지 질환 등이며, 내분비내과. 부인과. 피부인이비인후과, 순환기내과, 소화기내과 등으로 구분하여 진료에 임하고 있다.

윤영석 원장은 춘원당한방박물관도 부설로 운영하면서 한의학의 문화적 측면을 정리하는 일도 소홀히하지 않고 있다. 그의 부인이면서 춘원당한방박물관의 관장으로 활동하는 이윤선 관장은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경희대에 입학했을 때 봉사 동아리인 녹원에서 1학년 때 만나서 결혼에 골인하였다. 그의 집안에서 이어지는 목표가 있다. 자손이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 집안의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의 첫째 아들 윤홍걸은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하였고, 둘째 아들 윤준걸은 전주 우석대를 졸업하여 모두 한의사로 활동중이다. 이들이 춘원당을 계승하여 8대가 된 것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mjmedi@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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