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일제강점기의 유물 ‘洋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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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일제강점기의 유물 ‘洋醫’
  • 승인 2018.09.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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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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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근대 의료의 풍경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미스터 썬샤인’

황상익 著, 푸른 역사 刊

절대 김태리(고애신 역)가 예뻐서 보는 것은 아니다. 구한말 처절했던 우리의 역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조여 오는 일제의 침탈에서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조선 왕조가 안타까웠다. 위기를 타개하려고 고종은 여러 나라에 외교적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부당하고, 친일 대신들에 의해 폐위된다.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

백성들은 신분과 관계없이 총과 칼을 들고 의병을 조직하여 일제 침략에 맞섰다. 그중의 한 명이 양반집 규수로 ‘애기씨’로 불리는 고애신이다. 드라마에서 고애신과 유진 초이(이병헌)의 사랑, 고애신을 두고 구동매(유연석)와 유진 초이, 김현성(변요한)과의 사각관계도 흥미진진해서 매회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몰입해서 보게 된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근현대 우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최근 의료계에서도 한국 근현대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한의학은 일제강점기 유물일 뿐”(매일경제 2018년 9월 12일)이라고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것이 발단이다. 처음 듣는 신선한 주장이어서 대꾸할 가치도 못 느낀다. 근현대의학의 역사에 대한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황상익은 자신의 저서 『근대 의료의 풍경』에서 개항 즈음부터 경술국치까지의 의료의 변천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인 대한제국 1900년 1월 2일 제정·반포된 의사규칙 제 1조에는 의사를 “의학을 관숙하야 천지운기(天地運氣)와 맥후진찰(脈候診察)과 내외경(內外景)과 대소방(大小方)과 약품온량(藥品溫?)과 침구보사(鍼灸補瀉)를 통달하야 대증투제(對症投劑)하는 자”로 규정하였다. (『근대 의료의 풍경』, 649쪽) 당시 법에 따르면 의사는 한의사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초 의료인 수 통계를 보면 1910년만 보아도 조선인 의사의 숫자는 1344명이다. 이후에 1912년에는 조선인 의사의 숫자는 72명이고 의업자는 1653명이 된다. 1913년에는 조선인 의사의 숫자는 183명이고 의업자는 한 명도 없고, 의생 항목이 생겨 1462명이 된다. (본 책, 117쪽)

그 많던 조선인 의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시에 의사로 활동하던 한의사를 일제는 의업자로 격하시키더니 나중에는 의생으로 끌어내렸다. 일제강점기 서양의학을 교육받은 양의사만을 의사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해방 후 1951년 의료법에서 한의사로 명칭이 바뀔 때까지 한의사들은 일제강점기 의생으로 치욕스럽게 버텨냈다.

대한제국이 설립한 최초의 한·양방 병원이었던 광제원을 일제가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한약소(韓藥所)를 철폐하고 양방 위주의 병원으로 재편하였다. 저자는 대한제국 시기에 ‘한약’을 대체로 ‘韓藥’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漢藥’이라는 한자를 써서 철두철미하게 한의약을 말살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로 ‘양의’만을 의사로 인정하는 법을 만든 것처럼 일제는 조선에서 한의학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였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데 내세운 것은 조선의 개화였다. 1907년 동경 권업박람회에서는 조선의 미개함을 보여주고 자신의 식민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인 2명이 전시되어있었다고 하니, 일제의 만행은 통탄할 만 것이었다. 의료도 마찬가지여서 서양의학을 선진 의학, 조선의 한의학은 미개한 의학이라는 인식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심었다. 「황성신문」에서는 광제원에 부임하는 일본의 의사들이 서양의학으로 병을 잘 고친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기사화해서 언론플레이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의 의료정책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여 광제원이나 양방의료기관의 환자는 대부분 일본인이거나 조선의 귀족들이었다고 한다.

구한말 한의학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처럼 비극이다. 반만년 동안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던 한의사들은 일제강점기에 의생으로 격하되었다. 많은 한의사가 이에 맞서면서도 백성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였다. 그리고 대의(大醫)가 되기 위하여 강우규 의사(義士)처럼 고향을 등지고 독립운동을 한 한의사들도 있다. 일제의 한의학 말살 정책에도 한의학을 지켜온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철학이 담겨있는 의학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양의사 협회 회장은 역사를 무시하고 학문을 욕되게 하는 언행을 사과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국민 건강의 향상을 위해 한의사들과 손잡고 한의학의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협조해야 한다.

 

정유옹 / 사암한방의료봉사단,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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